This column was originally published by the Donga Daily (동아일보) on May 03, 2019.
나는 지난번 칼럼에서 “한국 사회가 다문화 다민족 사회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 대 타인’ 같은 양극화를 피하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은 그 주제를 조금 더 깊이 쓰려고 한다.
그전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 지난 칼럼을 포함해 쓰는 글마다 밑에 외국 출신 사람이 썼다는 이유만으로 혐오발언 댓글이 많이 달린다. 올해 1월 칼럼에서 폴 카버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도 비슷한 이유로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한국 생활을 한 지 15년이 넘었다.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말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같은 부탁을 하고 싶다. 우리 사회를 위해 좋은 의도로 쓰는 글들에 대해 내용을 비판하는 것은 괜찮지만, 외국 출신이 쓴다는 이유만으로 혐오발언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우리 사회의 일원이자 한국인이다.
사회심리학 관련 팟캐스트를 청취하다 부족심리 관련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은 자연적으로 부족 혹은 집단을 만든다는 주장이었다. 우리 대 타인을 만드는 것은 사람의 기본 심리다. 전쟁이나 말다툼도 우리 부족과 다른 부족 간에 하는 것이다. 외교라는 것도 사실은 사람이 계속 우리 집단과 타인 집단을 만들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양 집단 간 관계를 평화롭게 조절하기 위해 오랜 기간 해온 것이다.
폴란드 출신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이펠 연구진의 최소집단 관련 실험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자연적으로 우리 집단과 다른 집단을 인종, 민족, 종교, 생김새 등은 물론 아주 사소한 무의미한 것을 가지고도 만든다고 한다.
실제 한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임의로 그려진 점의 개수를 주고 몇 개의 점이 있는지 맞혀 보라고 했다. 참가자들의 답과 상관없이 그들을 ‘과대평가하는 사람’과 ‘과소평가하는 사람’ 등 두 집단으로 나누고 집단 내에서도 집단 간에도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그 다음 참가자들에게 자원을 배분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두 개 집단 모두 평등하게 배분하는 것보다 본인이 속한 집단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을 선호했다. 나아가 참가자들이 본인이 속한 집단이 다른 집단과 같은 정도의 지원을 받는 것보다도, 본인의 집단도 원래보다 절대적으로 적게 지원 받더라도 상대적으로 상대 집단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을 선호했다.
우리 사회에서 자연적인 한국인 대 외국인, 혹은 순수 한국인 대 다문화가정 같은 집단심리를 ‘똑같은 인간으로서 우리’ 혹은 ’한국 사회의 같은 일원으로서 우리’로 바꿀 수만 있으면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많은 집단 간 갈등들을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심리를 이렇게 바꾸려면 교육과 교류가 우선인 것 같다.
이미 많은 노력들이 있다. 교육부가 한국이 다문화사회인 것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기 시작했고, 여성가족부와 법무부는 특히 다문화가정 부부를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과 교류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넓게 늘리는 만큼 우리의 정의를 똑같은 인간으로서 우리 혹은 한국 사회의 같은 일원으로서의 우리로 바꾸기 쉬워질 것 같다. ’우리 집단’이 커지는 만큼 우리 사회자본도 커질 것이다.